단상

거울보기

toogari 2023. 10. 29. 00:41

제 컴퓨터 앞에는 작은 거울이 있습니다. 보니따 헤어샆에서 준 선물입니다. 거울이 있지만 그 거울을 통해서 저의 얼굴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한번 보기는 했습니다.

아버지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은 저의 얼굴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열연하고 있는 신구씨를 보면 아버지의 외모와 어느 정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외모를 알지 못하는 이들로 부터 받은 얼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였지만 "나이들어 보인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자주 이런 평가가 내려질 때 자신에게 그렇게 암시하곤 했었습니다. "성숙해 보인다는 애기.. "   그렇다고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그런 평가가 드러나지는 않아서 그렇게 당황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이들어 보이는 여러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천문학을 전공하였는데 그 전공에는 여러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컴퓨터를 이용한 학과라든지... 상상할 수 없는 숫자와 오차들을 다룬다든지...(예를 들면 태양의 질량은 10^33입니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존재한다든지... 그외에 정원이 작았습니다. 제 학년은 15명이었습니다. 여러 장점과 단점이 존재했는데 대학원생의 거의 모두를 얼굴로나마 알고 지냈습니다. 덕분에 86학번 대학원형들까지도 알고 지냈습니다. 1학년때 빌라델피아라는 학회를 했었습니다. 기독교인의 교제를 위해서 만들어졌었는데 대학원생 세분과 학부생 저 혼자 이렇게 네명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꾸준히 잘 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세분중에 정재훈이라는 형이 있었습니다. 형의 아버님은 순복음교단의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 모두 서울대 출신이셨는데  특별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느 날 그 형집에 모임을 했었던 적이 적이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그 집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를 마중해 주셨던 분은 형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셨는데... 저를 보시면 하시던 말씀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아 재훈이 친구구나"
"아니요. 신입생입니다."
"아 그럼 대학원생...?"
"아니요. 학부생이요..."

매우 놀라워 하셨습니다. 

다른 사건은 군대 제대후에 일어났습니다. 3학년 필수과목인 "천체물리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과목을 듣는 학생수도 적어서 강의실로 아담하였습니다. 많이 들어가면 20명 정도 그런 곳이었는데 같은 과가 아닌 사람이 함께 강의를 들으면 대번에 그 사람이 드러나곤 하였습니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교수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휴강을 하고 다들 밖으로 나가고 있었을 때 어느 한 어여쁜(?) 여학우가 저에게 다가오더군요.

"저 교수님이세요?"
"아니요. 오늘 교수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지요. 제가 나이만 들어보일 뿐 아니라 "지적이게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얼굴이 나이와 비슷하게 늙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사실로 부터 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는 거의 저의 나이보다 6살정도로 나이들어 보였고 지금은 거의 한두살정도 나이들어 보인다고 가정하면 결국 시간이 흐르면 나이에 맞는 얼굴을 가질 때가 오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더욱 밀고 나가면 동안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일차함수를 알면 이런 결론도 가능할 수도 있구나 싶을 겁니다.  )

하지만 나이에 맞는 얼굴을 가졌음 좋겠습니다. 많은 고민과 염려로 인해서 더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이에 맞는 고민과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나이들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얼굴을 들여다봐도 과연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 오래전에 쓴 글인데 읽어보니 뭔가 자기 도취적인 느낌이 물씬 나서 그 느낌을 살짝 없애보았습니다.